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직도 변해야 한다. 이건 생존의 문제다. 대개 혁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직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조직이 변하지 않으면 혁신도 추진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더하다. 조직이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위 '조직 변화관리'에 대한 이론은 많지만, 좀 더 근본적인 방안은 없을까?
조직의 변화를 저해하는 조직의 함정
조직의 변화가 저해되는 주요 요인은 구성원들의 사고에 있고, 이를 조직의 함정으로 표현한 이론이 있다. 조직행동학의 대가로 추앙받는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가 주창한 이론이다. 아지리스는 조직행동론 분야에서 혁신적인 이론을 제시하며 조직학습의 개인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사람이다. 그는 30년 동안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의 조직 변화에 관여해 왔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조직 변화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며, 실제로 이런 상황이 많은 조직에서 일어나고 있다.
1.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지리스는 이를 신봉이론(Espoused theory)과 사용이론(Theories-in-use)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신봉이론은 겉모습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근간이 되는 것이다. 반면 사용이론은 속마음에 해당되며 실제 행동으로 연결되는 생각이다.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간에는 대부분 괴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봉이론과 사용이론을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자.
- 신봉이론 : 개인이 스스로 믿고 있거나 표현하는 이론입니다. 즉,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믿는 가치관, 신념, 지식 체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실무행동을 이끌어 가는 원리들로서 즉각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행동의 근거적 신념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즉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생각, 사고, 신념들이다.
- 사용이론 : 실제로 행동할 때 사용하는 이론이다. 즉, 신봉하는 이론과는 다르게 실제로 행동할 때는 다른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봉이론이 행동에 대한 근거로 사용된 것이라면 사용이론은 실무행동을 위해 사용된 원리로써 관찰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실무자가 신중하게 자신의 행동을 반추하고 자기 대화가 없으면 사용이론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기술하지 못한다. 사용이론은 개인의 행동을 설계하는 묵시적이며 인지적인 지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위에서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사이에는 대부분 괴리가 있고 당사자는 그걸 깨닫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사이에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자.
- 방어기제 : 비판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여 실제로는 다른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론을 고수하는 경우가 있다.
- 상황의 제약 : 조직의 문화나 상황에 따라 신봉하는 이론과 다르게 행동해야 할 경우가 있다.
- 무의식적 행동 :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습관이나 태도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2. 모델 Ⅰ과 모델 Ⅱ
이처럼 자신은 절대 틀리지 않고 잘못된 건 상대방이라고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아지리스는 '모델 Ⅰ'으로 명명했다. 즉, '방어적 사고'를 말한다. 그런데 '모델 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당사자는 누구나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고 모든 문제는 조직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로 인해 조직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상이 발생한다. 아지리스는 이것을 '조직의 함정'이라는 것의 정체라고 했다.
조직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즉 '모델 Ⅰ'을 극복하려면 신봉이론과 사용이론을 일치시켜서 말과 행동이 같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사실을 바탕으로 계속 학습하고, 또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바꾸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지리스는 이를 '모델 Ⅱ'라고 불렀다. 이 모델은 '건설적 사고'로 달리 부를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이 원인을 자신에게서도 찾아보고, 자신을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자세를 갖출 때 비로소 조직의 변화는 시작된다.
모델 Ⅰ과 모델 Ⅱ를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자. 두 모델을 각기 다른 행동패턴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모델 Ⅰ :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방어적인 행동 패턴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동 패턴은 개인의 안전과 자존감을 지키려는 욕구에서 비롯되며, 조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모델 I의 주요 특징으로는 방어적인 태도, 상황과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경향,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억누르려는 경향 등을 들 수 있다.
- 모델 Ⅱ : 조직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생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델 II의 행동 패턴은 개방적인 소통, 협력,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며,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구성원들의 만족도를 향상할 수 있다. 모델 II의 주요 특징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개방적 소통, 협력적 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학습 동기, 자신을 돌아보고 개선하려는 자기 성찰적 태도 등을 들 수 있다.
3. 일원순환학습과 이원순환학습
이처럼 '모델 Ⅰ'에서 '모델 Ⅱ'로 진화하려면 일종의 학습이 필요하다.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면 기존에 자신이 가졌던 이론과 가정을 수정하는 계기가 된다. 이때 단지 행동상 변화만 꾀하게 된다면 아지리스가 말하는 '일원순환학습(single-loop learning)'에 빠지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정과 이론 자체를 바꾸는 '이원순환학습(double-loop learning)'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보통 무의식 중에 자신은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대전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원순환학습으로 이행하려면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입각해 대전제를 의심하고 학습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실은 대전제를 의식적으로 의심하기만 해도 모델 Ⅰ에 빠질 위험을 현저하게 줄여준다.
일원순환학습과 이원순환학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정리해 보자.
- 일원순환학습 : 조직 구성원들이 현재의 가정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려는 학습 방식이다. 즉, 기존의 틀 안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으로, 효율성을 중시하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징으로는 변화를 최소화하려는 안정성 추구, 단기적 문제해결에 집중,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폐쇄적인 사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책임회피 등이다.
- 이원순환학습 : 조직 구성원들이 기존의 가정과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관점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려는 학습 방식이다. 즉,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주요 특징으로는 새로운 전제와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변화 추구의 자세, 미래지향적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기적인 관점,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수용하고 통합하는 개방적 사고, 문제 발생 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책임감 등이 있다.
개념 간 관계와 조직 변화를 위한 종합적 방안
지금까지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모델 Ⅰ과 모델 Ⅱ, 일원순환학습과 이원순환학습이라는 각각의 대조적인 개념을 통해 아지리스가 말하는 조직의 함정과 조직변화를 위한 방법 등을 설명했다. 그런데, 개념 간의 관계가 혼동스러울 수도 있어 간단하게나마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 개인의 신봉이론과 사용이론의 차이가 모델 I과 모델 II의 행동 패턴을 결정한다. 즉, 모델 I은 신봉이론과 사용이론 간의 차이가 크고, 모델 II는 신봉이론과 사용이론이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 모델 I과 일원순환학습 : 모델 I은 일원순환학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델 I의 행동 패턴은 기존의 틀에 갇혀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 모델 II와 이원순환학습 : 모델 II는 이원순환학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델 II의 행동 패턴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장려하며, 조직 학습을 촉진한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이 비록 이론의 핵심을 간추린 것이긴 하지만 아지리스의 조직 변화에 대한 이론체계는 너무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단순하다고 해서 효과가 약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학습하는 조직"으로 유명한 '피터 센게'는 아지리스의 이론이 워크숍 현장에서 구현되고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경탄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 아지리스의 이론은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 패턴과 조직 학습의 관계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며,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조직의 변화, 더 나아가 조직의 변혁을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이 위에서 설명한 모델 II의 행동 패턴을 갖도록 격려하고 이원순환학습을 장려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리더들이 모델 II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리더의 방어적 태도가 조직을 어려움에 빠뜨린다. 사실 모델 II의 내용들을 보면 현대 리더십의 덕목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평소 개방적인 소통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아지리스의 이론을 통해 현대 조직에서 왜 그토록 소통을 강조하는지 더 잘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소통 자체보다 솔직한 소통, 그러니까 신봉이론과 사용이론이 일치된 상태에서의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잘못된 원인을 찾아보는 모델 II의 태도를 갖고 근원적 사고의 이원순환학습 자세를 갖는다면 조직이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역시 조직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그들이 가진 태도인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