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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터널링 : 결핍이 가져오는 명과 암

by 불꽃유랑단 2024. 6. 20.

벼락치기와 미루기는 언제나 쌍으로 움직인다. 벼락치기로 일을 끝내고 나면 매번 후회한다. 다음에는 여유를 갖고 일을 시작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벼락치기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일종의 결핍이 불러오는 효과다. 그러면 결핍이 효율성만 가져오는 것일까? 결핍과 그로 인한 터널링에 대해 살펴보자.


결핍은 집중과 효율을 만든다

학생이건 직장인이건 혹은 사업을 하는 사람까지 거의 예외 없이 너무 자주 벼락치기를 경험한다. 마감시한이 임박해서야 집중력이 발휘되는 지긋지긋한 반복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겪는 일이긴 하지만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자. 일찌감치 중간고사 시험 일정이 확정되고 나서 과목별로 공부계획을 세우고 나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뿌듯한 감정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대개는 시간만 흘려보내다가 시험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시험공부를 시작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시험전날까지도 조급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다가 저녁밥을 먹고 나서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고 그제야 전투모드에 돌입했을지도 모르겠다. 시험 당일, 시험 보기 10분 전에 왜 또 그렇게 미친 듯이 노트를 보고 했는지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런 행동패턴을 매번 후회하지만 또 거의 매번 반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벼락치기는 효과면에서 대체불가할 만큼 뛰어난 방법인 것이 사실이다. 거의 마법에 가깝다. 

 

대부분의 일은 데드라인에 임박해서야 속도가 난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데드라인에 임박해 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여유 있게 일을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매번 반복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과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 '엘다 샤퍼(Eldar Shafir)'는 "결핍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뤘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결핍 상황은 일의 효율성을 높인다. 데드라인이 임박하다는 것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바로 시간의 결핍이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결핍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멀레이너선과 샤퍼는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 시간을 여유 있게 준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부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결핍이 집중력을 가져온다

 

결핍은 한편으로 부작용을 낳는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효율성을 위해서는 사람을 결핍의 상태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그러나 결핍이 분명히 효율성을 가져오는 측면이 있지만, 그 보다 훨씬 큰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 멀레이너선과 샤퍼의 결론이다. 그들은 우리가 결핍되어 있을 때 그것을 효율적으로 자원배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기 전에 이미 결핍감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해 버린다고 보았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만 생각할 것이고, 바쁜 사람은 어떻게든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테고, 돈에 쪼들리는 사람에게는 당장 문제를 해결해 줄 조그만큼의 돈만 생각할 것이다. 결핍은 불쾌감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바쁜 사람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돈에 쪼들리는 사람은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다른 것들은 무시한다는 뜻이다. 집중의 힘을 뒤집으면 다른 것들은 지우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결핍이 사람을 집중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고 결핍이 사람들로 하여금 터널링(tunneling)을 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이는 결핍이 오로지 임박한 결핍을 제어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끔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터널링은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오로지 터널 밖으로 나가는 데만 집중하는 상태를 비유한 것이다. 앞만 열심히 쳐다보니 당연히 시야가 좁아진다. 

 

집중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결핍이 바로 현재 가장 중요한 어떤 것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는 터널링을 수반한다. 터널링은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결국 결핍은 집중과 터널링이라는 장단점을 불러온다.  

 

이 책에서는 결핍의 부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다. 그중 하나만 살펴보자. 

 

터널링-이펙트
터널링: 터널은 사람들의 시야를 좁힌다

 

결핍이 불러오는 터널링의 예 : 가난한 사람들의 인지능력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들은 1년에 한 번 수확시기에 돈을 번다. 작물이 팔린 직후에 그들은 현금을 많이 보유하게 된다. 하지만 돈은 금방 떨어지고 그 다음번 수확기까지 빈곤한 상태로 지낸다. 시즌에 따라 가난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부자라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수확 한 달 전과 한 달 후의 농부들 정신상태를 분석하니, 수확 시기 이전 그들의 IQ가 수확 이후 보다 9~10%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트레스 지수 역시 수확 이후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수확 이전의 몇 달 동안에 돈에 쪼들리는 바로 그 상태가 농부들로 하여금 낮은 지능을 드러내게 만들고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등 정신능력을 위축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볼 때, 가난한 사람이 지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원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 일부가 결핍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결핍을 경험한다. 그리고 결핍을 통해 앞에서 보았던 효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바쁜 사람은 계속 바쁘고 돈에 쪼들리는 사람은 계속 가난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니까 결핍은 좋은 효율을 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데드라인에 임박해서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높아져 갈 것이다. 당장의 효율이야 나겠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을 효율로 봐야 할지 의문이다. 멜레이너선과 샤퍼의 주장은 행동경제학적인 것이다. 결핍이 가져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의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데드라인 효과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위의 사탕수수 농부 사례에서 본 것을 연결하여 생각하면 시간의 결핍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정신적으로나 지능적으로 우수한 상태는 아닐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효율은 생기지만 좋은 효율은 아니란 이야기다. 어떻게든 시간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쉽지는 않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핍이 효율을 만들어 내는 상황은 일이 당장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일이 당장 하고 싶을 만한 것이라면 그런 식의 효율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보 같은 말일지 모르지만 일을 좋아하는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좋아하는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쨌든 이것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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