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남자화장실 소변기 정 중앙에 파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꽤 있었다. 소변기 밖으로 튀는 잔료를 줄이기 위한 장치인데, 이러한 아이디어가 행동경제학에 근거한 것임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로 '넛지'다. '넛지'는 인간의 심리에 기반한 부드러운 행동 유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워낙 잘 알려져 있는 개념이지만 한 번 짚고 넘어가자.
'넛지'란 어떤 개념인가?
'넛지(Nudge)'란 강압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말한다. 'Nudge'는 사전적으로 '팔꿈치로 쿡 찌르다', '살살 조금씩 밀다'를 의미한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은 "넛지(Nudge)"라는 책에서 '넛지'를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간접적인 개입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특정 선택을 금지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반응할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직접적인 개입과 구분되는 것이다.
넛지는 단순히 사람들의 행동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설계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더 쉽게 선택하도록 돕는 과학적인 방법이다. 핵심은 금지나 강요가 아닌, 주변 환경을 미묘하게 조정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기존의 규제나 금지와 달리, 넛지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미묘하게 조정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쉽게 말해, 넛지는 금지나 강요보다는 부드러운 설득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넛지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선택설계 : 사람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이용하는 정보와 프레임워크를 설계하여 선택 방향을 유도한다.
- 간접적인 개입 :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강요나 금지를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주변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
- 긍정적인 강화 :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했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제공하여 행동강화를 유도한다.
선택설계와 큐레이션 개념 이해하기
이제 '넛지'를 이해하기 위해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와 '큐레이션(Curation)' 개념을 살펴보자. 넛지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개념이다.
선택설계(Choice Architecture)
선택 설계는 사람들이 선택을 할 때 이용하는 환경이나 맥락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보 제시 방식, 선택 옵션의 구성, 기본 옵션 설정 등이 포함된다. 선택 설계자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고 싶은지에 따라 이러한 요소들을 조절하여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선택설계를 할 때, 구사하게 되는 주요 전략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선택옵션 제한 및 우선순위 정하기 : 선택 옵션을 제한하고, 중요한 선택 사항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여 의사 결정의 부담을 줄인다. 예를 들어, 금전 관리 앱을 사용하여 지출 항목을 분류하고 예산을 설정하거나, 할 일 목록을 중요도와 긴급도에 따라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 기본옵션 설정 : 행동 변화를 유도할 기본 옵션을 미리 설정한다. 예를 들어,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냉장고에 과일과 채소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보관하고, 간식 대신 견과류나 건강 간식을 준비해 둔다.
큐레이션(Curation)
큐레이션은 정보나 선택 옵션을 선별하고 구성하여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큐레이션 전략을 통해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큐레이션의 주요 전략은 다음과 같다.
- 개인화 : 사용자의 특성, 관심사, 과거 행동 등을 기반으로 개인화된 정보와 선택 옵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용자의 구매 기록을 분석하여 추천 상품을 제공하거나, 뉴스 사이트에서 사용자의 관심 분야에 맞는 뉴스 기사를 선별하여 보여주는 것이 있다.
- 편집 및 필터링 : 방대한 양의 정보 중에서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만을 선별하여 제공한다. 예를 들어, 검색 엔진에서 검색 결과를 관련성, 신뢰성 등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거나, SNS 피드에서 스팸이나 부적절한 콘텐츠를 필터링하는 것이 있다.
- 간편한 접근성 제공 : 사용자들이 필요한 정보나 선택 옵션을 쉽게 찾고 접근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한다. 예를 들어, 웹사이트에서 메뉴를 명확하게 구성하고, 중요한 정보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 있다.
선택 설계와 큐레이션 개념은 넛지 전략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택 설계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고 싶은지 환경을 조성하고, 큐레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넛지의 사례, 그리고 지향점
넛지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차량 유도선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안전운전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에 옐로카펫을 깐 것을 볼 수 있다. 옐로카펫은 바닥과 벽을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횡단보도 대기 구역이다. 엄격한 법 적용보다 이러한 작은 시도가 사고예방에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넛지의 활용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넛지 개념을 제시한 탈러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탈러가 넛지를 통해 지향하는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합리적인 경제인으로써의 인간과 효율적인 시장이 아닌 비효율적인 인간과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누군가 개입해야 하는데, 그 방식은 부드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지향점이다. 경제학에 인간의 심리적 요소를 끌어 온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에 인간적인 요소를 복원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완전히 합리적이지도 냉정하게 계산적이지도 않다. 경제현상을 현실감 있게 포착하려면 경제인으로써의 인간이 아니라 본래의 인간이 자리해야 한다. 넛지는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중시한 행동경제학의 틀에서 보아야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 너무 좁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어쨌든 넛지는 활용가능성이 아주 높은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에 바탕을 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공공정책에서 개인의 자기 계발까지 폭넓은 활용이 가능하다. 일단 자신의 주변부터 살펴보고 하나둘씩 적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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