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적으로 끌리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인지상정이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알아야 하고, 그다음 상대방의 스타일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일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오늘은 그 기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혼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같이 하는 사람들 간 서로 스타일이 맞아야 성과를 내기 용이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첫 상사로 누구를 만나느냐가 이후 생활을 좌우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사람 간의 관계는 중요하며, 일종의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요즘은 흔히들 '케미'가 좋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일하는 스타일이 서로 맞는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딜로이트 컨설팅에는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 시스템 미국의 생물인류학자인 '헬렌 피셔'와 분자생물학자인 '리 실버'의 조언을 토대로 직장 내에서 업무 관련한 직원들의 행동 특성과 성향을 네 가지 스타일로 정리한 목록이다. 사람들에게는 이 네 가지 스타일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사람마다 하나 혹은 두 개의 스타일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데 이것이 그 사람의 스타일을 결정하게 된다. 이 네 가지 스타일은 '탐험가형(pioneers)', '추진가형(drivers)', '관리자형(guadians)', '통합가형(integrators)'이다. 이 각각의 스타일은 장점이 있고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딜로이트 컨설팅의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은 시스템 목록 작성에 조언을 제공했다고 알려진 '헬렌 피셔'의 연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의 연구인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스타일과 상호작용에 대한 뇌과학적인 관점에서의 연구 결과"에서 분류 체계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국내에서는 "나는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에 소개되어 있다.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헬렌 피셔의 이론을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자.
헨렌 피셔의 네 가지 성격유형
헬렌 피셔는 먼저 인간의 네 가지 성격유형과 각 유형의 특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두뇌에서 작용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 테스토스테론, 세로토닌, 에스트로겐 비율에 따라 성격유형이 달라진다. 성격유형에 따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도파민 계통의 특정한 유전자와 연관되어 있는 성격적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런 유형을 '탐험가형'이라고 부른다. 탐험가는 자신과 함께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즉, 함께 놀 수 있는 'Playmate'를 찾는 것이다.
- 세로토닌 계통의 특정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은 차분하고 사교적이며 조심성이 많다. 그들은 관습과 전통을 수호하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뛰어난 자질을 발휘한다. 이런 사람들을 '건축가형'이라고 한다' 건축가형은 착실하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 가정과 전통에 충실한 사람을 찾는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Helpmate'를 찾는 것이다.
- 테스토스테론은 흔히 남성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이 물질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대담하고 경쟁의식이 강하다. 그리고 시스템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사람은 '지휘관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토론하고 이론을 세우고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즉, 'Mindmate'를 찾는다.
- 에스트로겐은 여자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남녀를 불문하고 강하게 작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실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또 전체를 통합하여 볼 줄 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말재주가 탁월하며 사람의 몸짓이나 자세, 얼굴표정, 목소리 톤만으로도 생대방의 생각을 읽어낸다. 이러한 유형을 '협상가형'이라 부른다. 이들은 마음속 깊이 친밀감을 나눌 수 있고 삶의 의미가 되고 영감을 주고 영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 즉 'Soulmate'를 찾는다.
그러면 이제 헬렌 피셔의 성격유형과 연계해서 딜로이트 컨설팅의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을 살펴보자. 이 시스템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스타일이다.
딜로이트의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
- 탐험가형 : 팀원들에게 에너지와 영감을 불어넣는 유형이다. 가능성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믿는 바를 밀어붙이기도 한다. 탐험가형이라는 말과 어울리게 대담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며 독창적 접근을 즐긴다.
- 추진가형 : 도전과 실행을 중시하는 타입이다. 결과를 늘 중시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맞고 틀리고를 확실히 구분하려고 하며, 논리와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 관리자형 : 무엇보다 안정성에 가치를 둔다. 질서와 엄격함을 우선시하는 실용주의자들이고 리스크를 회피하려 한다.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중시하며 디테일에 강하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 통합가형 : 사람들을 모으고 팀을 만드는 것에 가치를 둔다. 좋은 관계를 맺는 것과 팀에 대한 책임감을 최우선시한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관계가 중요하며 서로의 일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을 유지한다. 사람 간의 공감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좋다.
헬렌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최고위급 경영자 중에는 탐험가형의 사람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추진가형이었다. 각각 유형의 비중을 보면, 탐험가형이 36%, 추진가형이 29%, 관리자형이 18%, 그리고 통합가형이 17%였다. 탐험가형과 추진가형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시장환경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성장과 생존을 위해 이러한 유형의 경영진이 더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을 보는 활용 측면의 관점
위의 네 가지 유형은 크게는 두 개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탐험가형과 추진가형, 그리고 또 하나는 관리자형과 통합가형이다. 두 부류의 유형 사이에는 뛰어남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성격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탐험가형과 추진가형의 관점에서 보면 관리자형과 통합가형 스타일의 직원들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쓸데없이 따지기를 좋아하며 새로운 사업 추진을 겁내는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또한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로 비칠 것이다. 반대로 관리자형과 통합가형 사람들의 눈에는 탐험가형이나 추진가형 직원들이 어떻게 보일까? 아마 전후 사정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사람들로 보이지 않을까? 신규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 시장상황이나 현재 회사의 현실을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하는데, 그런 리스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온통 머릿속에는 불완전한 생각으로 가득 찬 고집불통의 사람들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성격유형에 따른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조직 차원에서는 각 유형의 장점을 인식하고 각 유형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어야 할 뿐이다. 성격유형에 따른 갈등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회의 하나를 진행해도 성격유형 차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가령 아무런 준비 없이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대부분 탐험가형과 추진가형 사람들이 회의를 주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관리자형과 통합가형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들의 생각도 중요한데 말이다.
앞에서 먼저 살펴본 애정과 관련된 성격유형은 서로 맞는 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서로 잘 맞는 동반자를 찾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나 그다음 이어서 본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에서는 서로 맞는 스타일의 찾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로 스타일이 맞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는 없다.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스타일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되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의 집단과 서로 잘 보완하고 어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이것은 잘 생각해 보면, 적재적소 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비즈니스 케미스트리 시스템은 업무영역에서 사람들의 성격유형을 네 가지로 나눠놓은 것일 뿐 활용 분야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활용의 길이 열려있다. 사람들마다 성격유형을 파악하여 적재적소 배치를 실행하고 경영진의 경우 균형을 생각하여 배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활용이다. 개념과 관점을 갖고 가능한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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