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생존수단을 어떤 식으로 마련했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것을 생산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유통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의식주 마련을 위해 인간은 자급자족으로 시작해 다양한 교환수단을 고안해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마케팅이다. 즉, 상업 발전 단계와 마케팅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인류 역사에서 상업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넘어 사회, 문화, 경제 발전의 핵심적인 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업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발전한 것이 바로 '마케팅'이다. 상업 발전 단계는 자급자족, 직접교환, 간접교환, 비대칭적 직접판매의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
상업 발전의 역사를 훑어보자.
상업 발전 단계, 그리고 마케팅 개념의 출현
상업 발전의 첫 단계는 자급자족 시대다. 이 시대는 상업 탄생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 이 시기에는 자급자족을 위해 저마다 사냥을 하고 농사도 지었다. 아직까지는 특화된 노동도 없었고 재화의 교환 개념도 없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마케팅의 기초적인 개념도 없었다고 봐야 한다.
상업 발전의 두 번째 단계는 직접교환의 시대다. 물물교환의 시대라고도 할 수도 있다. 인류 초기에는 물건을 직접 교환하는 물물교환이 주를 이루었다. 물물교환이 시작되면서 일부 노동의 특화가 시작됐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고 교환을 통해 생계를 꾸리는 것이 합리적인 삶의 양식이다. 사냥에 특화되어 있다면 농사를 짓는 것보다 사냥을 하고, 그것을 농산물과 교환하는 것이 더 낫다. 직접교환은 거래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방식이다. 서로 물건을 교환할 상대를 찾는 것 자체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높은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화폐와 시장이다. 화폐는 표준화된 거래의 매개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화폐의 등장으로 거래비용은 현저히 줄고 거래는 활성화되었다. 시장은 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장소다. 시장에서 팔아야 할 물건을 화폐를 받도 팔고 그 화폐로 필요한 물건과 교환하면 됐다. 아마 이 시기에 마케팅 개념도 태동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물건을 더 많은 화폐를 받고 팔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았겠는가.
상업 발전의 세 번째 단계는 간접교환의 시대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이제 물건들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교환 방식으로는 대량생산된 제품을 유통시킬 수 없었다. 대량생산 시기에는 필연적으로 중간상이 필요하다. 즉, 유통채널이 필요해진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중간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문적인 중간상이 등장했다. 중간상의 존재로 인해 생산자는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됐고, 소비자는 중간상에게 필요한 제품을 사면 됐다. 중간상의 등장은 화폐와 시장의 출현과 마찬가지로 거래비용을 현격하게 낮추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중간상의 출현으로 마케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소매점의 경우는 현대적 개념의 마케팅이 정립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 상업 발전의 마지막 네 번째 단계인 비대칭적 직접판매를 다룰 차례다. 20세기 초 산업혁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대형화된 제조업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형화된 제조업체 중 일부는 중간상에게 맡겼던 판매기능을 직접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이유는 중간상의 난립이다. 제조업체로부터 최종소비자에 이르는 단계에 지나치게 많은 중간상이 개입되어 있어 판매가격을 상승시켰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둘째, 대부분의 중간상은 여러 제조업체의 제품을 취급하다 보니 특정 제조업체 제품 판매에 소홀한 경우가 많았다. 셋째, 사용법이 복잡하고 부가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한 제품의 경우 중간상의 역할이 제한되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대형 제조업체들은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영업사원과 판매 지점을 갖추어 유통채널을 단순화했고,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소비자에게 더 밀착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보면, 제조업체는 제품을 생산하고 중간상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자사의 유통망을 갖춘 제조업체는 유통구조를 단순화한 것 이외에 소비자의 요구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기 용이하다는 장점도 갖게 된다. 즉, 현대적 마케팅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마케팅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상업 발전 단계와 마케팅을 결부시켜 생각해 보니 마케팅 개념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이제껏 마케팅을 공부하다 보면 제조업 중심의 관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현대의 마케팅은 유통업자의 마케팅이 아니라 제조업자의 마케팅인 것이다. 상업 발전 단계를 살펴보니 그러한 면이 이해가 된다.
과거에는 고가의 제품 위주로 제조업자가 직접 유통을 담당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와 가전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저가의 일상품도 제조업자가 직접 유통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오뚜기 같은 식품 회사들이 자사의 전용 쇼핑몰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마케팅일 것이다. 최전방 접점에서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면서 누릴 수 있는 마케팅적 장점이 무척 크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누군가의 발명품이 아니라 일면 역사적 산물이다. 물론 마케팅 발전에 기여한 학자들이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업의 발전 단계에서 출현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마케팅 개념들이 출현하고 있지만 마케팅의 근본은 상업의 발전 단계에 붙들려 있다. 이 근본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의 출현과 간접교환의 촉진, 그리고 비대칭적 직접판매의 대두까지 상업의 중대 변화 순간들을 추적하다 보면 마케팅의 본모습이 보인다. 마케팅을 단순한 기법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되는 이유다. 저변에 깔린 맥락과 함께 마케팅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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