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까? 보통은 그럴 거라고 생각하거나 그러기를 원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는 타인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설득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로버트 B. 치알디니'는 자신의 책에서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또 거꾸로 타인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를 다루고 있다. 살펴보자.
사람들은 누구나 편의를 위해 '사고의 지름길(Mental Shortcut)'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모든 문제를 숙고한다면 너무 피곤한 일이고 경제적이지 않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생각의 특정 영역을 생략한 일종의 간편한 사고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사고의 지름길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는 심리학 원리에 입각해 남들의 결정을 쉽게 끌어낼 수 있는 6가지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상호성의 원칙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무료로 선물을 받으면 그 사람은 빚진 느낌을 갖게 되어 되돌려 주고 싶어 한다. 누구든 빚을 지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비록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빚을 만들어 놓으면 상대는 그 빚을 갚아야 마음이 편해진다. 마트에 가보면 시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식은 대표적인 상호성의 원칙에 입각한 판매기법이다. 일단 시식을 한 사람은 그 상품을 구매할 확률이 확 올라간다. 시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료로 상품을 사용하게 하는 마케팅 기법도 흔한데, 샘플 같은 것을 사용하게 하면 일단 마음의 빚이 생겨 구매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상호성은 강력한 원칙이다. 만약 상호성의 원칙에 흔들려 그다지 필요도 없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방어하려면 처음부터 빚을 지면 안된다. 시식이건, 무료 샘플이건 아예 관심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호감 원칙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더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친절하고 유쾌하며 공감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유리하다. 영업사업들을 유심히 보면 호감 원칙을 활용한 대화를 구사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 가벼운 주제부터 시작해서 사는 곳, 출신 학교, 관심사 등을 물어본다. 이게 다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고객과 유사점을 찾으면 친금감이 들게 되고,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우리가 자주 들어 본 수사기법이 있다. 바로 '굿캅 배드캅' 전략이다. 취조를 진행할 때, 한 경찰이 피의자를 윽박지른다. 그러고 나서 한 경찰이 다가와 음료나 담배를 권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준다. 그러면서 죄를 인정하면 피의자를 적극 돕겠다고 나선다. 사람은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잘 넘어가게 마련이다. 피의자는 이런 상황에서 자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호감 원칙을 활용해 다가오는 판매자에게 무턱대고 넘어가지 않으려면 말하는 상대방 자체의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 자체와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분리해야 한다. 그 사람이 팔려고 하는 상품에만 집중해야 한다.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물건을 판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팔았어도 물건을 샀을까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사회적 증거 원칙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책 같은 경우도 베스트셀러 타이틀이 걸리면 판매가 더욱 확대된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도 인기상품을 먼저 검색하게 된다. 사회적 증거 원칙은 일종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설득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증거 원칙은 제품을 구매할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군중심리가 발생하는 모든 현장에서 나타난다. 조직 내에서 대세를 따르고 소수 의견을 내지 못하는 심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심리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면 곳곳에 숨어있는 장치들을 간파해내야 한다. 왜곡된 군중심리를 방어하려면 표면적으로 보이는 대세가 실제가 아니란 것을 알아채야 한다. '다들 하니까 옳겠지', '다들 사니까 좋겠지'하는 막연한 심리를 경계해야 한다.
권위의 원칙
사람들은 전문가자 지도자로 여겨지는 사람을 더 믿고 따른다. 전문가 타이틀을 사용하거나 유명인의 인증을 활용하는 것은 설득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보통 권위에 약하다. 우리가 실감하고 있듯 권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는 어찌 보면 권위에 복종하면서 삶을 이어온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낸 DNA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권위에 지나치게 약해질 수 있는 데, 주의를 요한다. 권위에 불합리하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권위에 대해 의심을 품어야 한다. 전문가의 권위가 내세워져 있다면 그 전문성의 실체를 의심해봐야 할 것이고, 그것이 직함이라면 권위를 증명하는 근거가 되는지 짚어봐야 한다.
희소성 원칙
보통 사람들은 손에 쉽게 넣을 수 없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제품의 수량을 제한하거나 기간 한정 할인을 진행하는 것은 구매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는 자유와 관련이 있다. 손에 넣을 기회가 제한된다는 것은 손에 넣을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희소성의 가치에 사람들은 쉽게 무너진다. 한정판매라고 하면 무턱대고 사고 싶어 진다.
희소성을 무기로 한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희소한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말 필요해서가 아닌 단순히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 자신에게 꼭 필요할 때만 희소성이 의미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관성 원칙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도록 노력한다. 과거에 한 약속을 지키거나 표현했던 의견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설득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처음 결정한 것을 일관성 있게 반복하는 것은 집단을 이뤄 살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 토대다. 일관성은 인류의 자산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한 경향이 심해지면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집착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고가의 물건을 사기로 결심했다면 나중에 옵션 첨가 등으로 가격이 다소 올라가도 사기로 결정한 것을 포기하기 힘들다. 자동차 구매계약을 생각해 보자. 처음 생각했던 가격보다 차량을 검토하면서 가격은 계속 올라간다. 그래도 대부분 결국 구매결정을 유지하게 된다. 일관성은 본래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일관성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면 더 늦기 전에 발을 빼야 한다.
지금까지 설득에 관한 6가지 원칙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설득의 심리학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뿐 아니라, 자신이 설득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설득의 심리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이러한 심리를 악용하려는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설득의 심리를 알아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사고의 지름길을 악용한 6가지 설득 무기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속기 쉬운 설득 전술을 제대로 이해해 소중한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 자세히 숙지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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