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승패가 갈리는 일이 많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과도하게 몸과 마음을 쓰기 때문에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한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주로 경제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지만 개인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승자의 저주에 대해 경제학적 쓰임을 먼저 알아보고 개인적 차원으로 확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것의 실상을 들여다보니 이득은 고사하고 손해 막급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다양한 상황에 서 쓸 수 있는 말이자만, 일단 경제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경제분야에서의 승자의 저주
경제분야에서 말하는 승자의 저주는 주로 '공통 가치 경매(common value auction)'에서 승자인 낙찰자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금액을 지불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경제학 측면에서 볼 때, 경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공통 가치 경매와 개인 가치 경매다. 이 중 공통 가치 경매는 경매 대상물에 대해 입찰자 각자가 갖고 있는 정보가 다른 경우로, 석유 채굴권에 대한 경매가 대표적인 예다. 개인 가치 경매는 경매 대상물에 대한 입찰자 개개인의 취향 또는 선호도가 다른 경우다. 미술품 경매가 대표적인 예다.
승자의 저주라는 용어는 공통 가치 경매의 사례에서 등장한 것이다. 1950년대 당시 미국 텍사스 해양 석유 채굴권 경매가 있었는데, 과도하게 달아오른 분위기로 인해 낙찰가가 평가 금액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에서 결정됐다. 이후 행태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자신의 저서 제목을 "승자의 저주"라고 지으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공통 가치 경매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입찰 참가자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경매 대상물에 대해 호가를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높은 호가를 제시한 입찰자에게 낙찰된다. 문제는 입찰 대상물의 객관적인 가치가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 가치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러 가지 평가 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승자의 저주를 이야기하려면 객관적 가치까지는 아니어도 적정가치를 산출할 수는 있어야 할 것이다. 입찰 참가자가 충분히 많다면 제시된 호가들의 평균을 적정가격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입찰 참가자가 다섯이라고 해보자. 입찰 대상물은 축구공을 만드는 회사다. 각각의 호가는 A : 22억 원, B : 27억 원, C : 32억 원, D : 38억 원, E : 31억 원이었다. 이렇게 되면 가장 높은 호가를 제시한 D가 낙찰자가 된다. 이 경우 호가의 평균값은 30억 원이다. 호가의 평균값인 30억 원을 적정가격이라고 가정한다면 낙찰자인 D는 8억 원을 과다지출한 것이 된다. 만약 경매 분위기가 과열된 양상을 보여 전체적으로 높은 호가를 제시한 것이라면 확실히 과다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경매 열기가 그리 높지 않아 A, B, E 업체만 참가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평균값은 약 27억이었을 것이고 최종 낙찰가도 31억 원에 불과했을 것이다. 경매 분위기가 과열되었을 때 승자의 저주가 나온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승자의 저주 현상은 자주 나온다. 경매는 실제 자주 이용되는 거래방식이다. 기업 인수합병, 정부조달, 주파수 경매, 기업공모 등 다양하다. 어떤 대상물의 객관적 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언제든 승자의 저주는 발생할 수 있다. 반면, 개인 가치 경매에서는 승자의 저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호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과 선호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객관적 가치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기 힘들다.
확장된 개념의 승자의 저주 : 승자의 저주 일반론
이제, 승자의 저주라는 개념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승리는 누구나 꿈꾸는 목표다. 경쟁에서 이기고, 목표를 달성하고, 최고가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모든 승리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승리가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바로 '승자의 저주'라는 이름의 역설적인 현상이다. 승자의 저주는 마치 로또 당첨의 저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꿈에 그리던 목표를 이루었지만, 정작 손에 쥔 것은 예상치 못한 고통과 부담이다. 경매에서 낙찰된 물건이 예상보다 가치가 낮거나, 인수합병한 기업이 예상보다 부실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지만 그 밖에도 승자의 저주는 다양한 양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왜 승자의 저주가 발생할까? 정리해 보면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다음과 같다.
- 정보의 비대칭 : 입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경매 참여자들은 다양한 가격을 써낼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아주 높은 가격을 제시할 가능성이 생긴다.
- 과열 경쟁 :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판단이 우세하게 작용하여,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게 될 수 있다. 꼭 감정적인 판단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정보로 인해 무리한 판단을 할 수 있다.
- 기대와 현실의 차이 : 승리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실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실망감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경매의 경우 말고 보통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가 큰 우울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승리가 결과적으로 그 사람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경우도 많다. 승리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자.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를 보자.
- 객관적인 정보 수집 :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매킨지 조사에 따르면 인수 합병 사례의 절반 이상에서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고 한다.
- 감정 조절 : 승리에 대한 욕심이나 두려움을 조절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과열된 경매의 경우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워런 버핏은 인수 합병에서 승자의 저주를 피하려면 최고 평가액에서 20%를 낮추어 호가를 제시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 최악의 시나리오 대비 :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으므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한 계획을 세워두는 것이 좋다. 너무 힘들고 피곤한 일이기는 하지만 최악을 피하기 위한 시나리오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 전문가의 도움 :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판단하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승자의 저주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승진, 입학, 수상 등 어떤 분야에서든 승자의 저주는 발생할 수 있다. 높은 기대감, 과도한 스트레스, 외로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승리의 달콤함에 취하기 전에, 승자의 저주라는 위험을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승리는 목표 달성의 과정일 뿐,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승리뿐만 아니라 과정 속에서 얻는 경험과 성장 또한 중요하다.
결국 승자의 저주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한다면,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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