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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부터 배우기 : 매슈 사이드의 "블랙박스 시크릿"

by 불꽃유랑단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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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부터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먼저 실수나 실패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리고 실패는 좋은 기억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배우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우리는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매번 놓치고 만다. 안타까운 일이다. 실패의 피드백이 가장 가성비 좋은 개선 방법이지만 현실에서는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일이 많다. '실패로부터 배우기'에 관한 아주 진지한 고찰을 담은 책이 있다. '매슈 사이드(Matthew syed)'의 "블랙박스 시크릿"이다. 이 책을 토대로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다뤄보려고 한다.


골프 실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1타, 1타에 집중해서 스윙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스윙을 한다면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으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 '매슈 사이드'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며 이를 어둠 속의 골프에 비유했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의료업계항공업계를 비교한다. 이 두 업계는 실패의 영향이 큰 대표적인 업계다. 그런데 두 업계의 실패에 대한 대처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결과도 크게 엇갈린다. 미국의 의료업계에서는 의료사고로 연간 4만 4천 명에서 9만 8천 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그러나 항공업계는 2013년 기준 탑승객 30억 명 가운데 사망자가 210명에 불과했다. 양 업계의 이러한 현격한 차이실패를 대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의료업계는 실패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지만, 항공업계는 조직문화 밑바탕에 실패로부터 배우는 자세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슈-사이드-블랙박스-시크릿
매슈 사이드, "블랙박스 시크릿"

실수로부터의 배움이 주는 효과와 실패를 방치하는 효과

실패로부터 배움이 주는 효과 : 누적 선택

매슈 사이드는 실패로부터의 배움이 주는 효과실패를 방치하는 효과를 각각 설명하고 있다. 그는 먼저 실패로부터 배우는 효과를 '누적 선택'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다. 이는 진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예로 설명한다. 그가 제시하는 예는 이렇다.

 

원숭이가 타자기의 키를 아무렇게나 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특정 구절(28자로 이루어짐)을 타이핑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상상하기 어렵지만 원숭이의 타자속도가 충분히 빠르더라도 우연히 28 문자의 한 문장을 제대로 치려면 우주 나이인 138억 년을 10억 곱한 다음 다시 10경 곱한 정도의 방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도킨스는 누적 선택의 메커니즘을 응용했다. 먼저 원숭이가 무작위로 타자기의 키를 치는 것처럼 무작위로 문장을 자동 생성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무작위로 문장을 만들 때마다 검사를 통해 목표로 삼은 구절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문자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배제하도록 프로그램화했다. 이 작업을 계속 반복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니 1980년대의 컴퓨터라고 해도 일치하는 문장이 생성되기까지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매번 시행할 때마다 올바른 선택을 기억하게 하여 다음으로 연결하는 누적 선택의 메커니즘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위의 결과는 생물학적 진화의 방향과 유사하다. 생명이 단세포에서 복잡한 인류로 진화한 것도 누적 선택의 덕분이다. '돌연변이로 다양한 생물이 탄생하고, 그중에서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자연도태를 통해 살아남는다'라는 선택을 거듭한 결과 생명은 빠르게 진화했다. 이러한 누적 선택의 열쇠가 바로 '실패하고 그 결과로부터 배움을 축적하는 것'이다. 매슈 사이드는 항공업계가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원인을 항공기의 블랙박스에서 찾았다. 항공기에는 웬만해선 파괴되지 않는 블랙박스를 갖고 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면 박스를 열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고원인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절차를 수정한다.       

 

실폐를 방치하는 효과 : 폐쇄회로 현상과 비난심리

그렇다면 의료업계도 항공업계와 마찬가지로 실수로부터 배우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인간은 원래 실수로부터 배우는 존재가 아니다. 의료와 관련된 하나의 역사적 사례가 있다. 2세기경, 그리스 의학자가 사람의 몸에서 혈액 일부를 뽑아 독소를 배출하는 '사혈' 요법을 퍼뜨렸다. 이 요법은 병으로 약해진 환자의 체력을 더욱 빼앗을 뿐이었는데도 19세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면 사혈 요법 때문이고, 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병이 너무 심각해 사혈 요법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요법의 유효성은 검증되지 않았다. 이처럼 실폐로부터 어떤 배움도 얻지 못하는 것이 '폐쇄회로 현상'이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자신의 저서 "예언이 끝났을 때"에서 '폐쇄회로 현상'에 대해서 심도 있게 연구했다. 1954년 페스팅거는 어떤 사이비 교주가 '12월 21일 세계는 대홍수가 일어나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예언했음을 알고 그 교단에 잠입했다. 신도들은 그 예언을 믿고 직장을 그만두고 그 교주와 함께 살고 있었다. 페스팅거는 그 예언이 빗나가면 신도들은 어떻게 행동할지가 궁금했다. 

 

예언한 그날이 지나고 예언은 실현되지 않자 신도들은 교주를 사기꾼이라 비난하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기는커녕 '신께서 우리의 깊은 신앙심을 어여삐 여겨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다'라고 도취되어 전보다 더 열성 신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신념과 다른 사실이 나타났을 때, 사실을 인정하고 신념을 바꾸거나, 사실을 부정하고 신념을 바꾸지 않는 동시에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을 만들어낸다.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사실을 인정하고 신념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기를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패스팅거는 이를 '인지 부조화'라고 명명했다. 인지 부조화가 폐쇄회로 현상을 일으킨다.

 

실패로부터 배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비난 심리다.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투약 실수를 관리하는 8개 간호팀을 6개월 동안 조사한 연구가 있다. 연구결과 실수를 철저히 추궁하고 실수에 대해 강한 페널티를 준 팀은 실수 보고가 다른 팀에 비해 10퍼센트로 크게 줄었지만 실제로 실수는 평균보다 더 많았다. 반대의 경우는 실수 보고는 많았으나 실제 실수는 평균보다 적었다. 벌칙을 강화하는 것으로 실수의 수를 줄일 수 없다. 오히려 보고가 줄고 개선을 위한 의견도 사라지고 만다. 

 

실수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겹쳐져 나타난다. 누구 하나의 실수인 경우는 적다. 다양한 각도에서 실수의 원인을 검토해야 한다. 이런 분석을 게을리하고 누군가 희생양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이래서는 실패로부터 배울 수 없으며, 실수도 줄지 않는다. 실패는 학습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실패로부터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슈 사이드가 제시한 방법두 가지만 간단하게 소개한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대표적 방법 두 가지

무작위 대조군 연구

앞에서 예로 든 사혈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조군 연구를 통하면 된다. 사혈을 한 치료군과 사혈을 하지 않은 대조군을 비교하는 것이다. 각 그룹의 치료효과를 비교하면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 이 같은 무작위 대조군 연구는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방법이다. 백신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많이 쓰인다.

 

실패를 가정하고 미리 검증하는 '사전 부검'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ry A. Klein)'이 제안한 방법이다. 어떤 프로젝트 실시 전에 실패를 가정하고 '왜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지'를 팀이 함께 검증하는 방법이다. 프로젝트 참여 전원을 모아놓고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가정하고 실패 이유를 최대한 많이 적게 한 다음 프로젝트 책임자부터 발표하게 한다. 이 과정은 실패 이유가 더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진행된다. 사전 부검은 잘 드러나지 않는 실패 이유를 사전에 부각해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목적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실패를 단순한 실수가 아닌 성장을 위한 귀중한 기회로 보는 관점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책 등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더군다나 위에서 소개한 방법론은 실용적인 문제해결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는 실수를 반복한다. 특정 문제 같은 경우에는 아무 개선 없이 지겹도록 반복된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 다이어트 문제 같은 것들이 모두 이러한 예에 속할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매번 집중해서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거의 매번 실패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혹시 이런 지겨운 반복이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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