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의 제일 덕목을 창의성에서 찾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끊임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장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어쩌다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안정적으로 혁신적인 생각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디어 발상법이라고 소개되는 방법론들이 꽤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브레인스토밍이나 트리즈가 모두 그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발상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여기에 대해 오래전에 답을 주었고 아직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제임스 웹 영'이 제안한 아이디어 생산법이다. 이 방법은 광고업 종사자가 창안한 것이지만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광고 분야 외의 전문가들도 지지하는 방법론이다. 가령, 과학자, 엔지니어, 예술가, 기획자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출판된 번역본의 서문은 KAIST 정재승 교수가 썼다. 아주 간단한 방법론이기 때문에 활용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이디어 생산의 기초
제임스 웹 영의 아이디어에 대한 기본 생각은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이 아니라는 점과 아이디어 생산에도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공식이 있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일이 어떤 물건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명확한 하나의 과정이며, 배울 수 있고 조절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과정에도 원리와 방법이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특정 아이디어를 어디서 찾아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아이디어가 생산될 수 있는 방법을 사고방식 안에서 어떻게 훈련할 것인가 하는 점과 모든 아이디어의 근원이 되는 원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이디어 생산의 원리
원리는 두 가지다.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데 바탕이 되는 일반원리와 관련해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 아이디어는 오래된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디어 생산과 관련해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 오래된 요소들을 가지고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능력이 '관계'를 보는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중요한 것은 팩트 자체라기보다 일련의 팩트에 일반법칙이 적용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이디어 생산을 위해서는 팩트 사이의 관계를 찾으려는 사고 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관계를 찾는 습관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아이디어 생산의 기술
아이디어는 새로운 조합이라는 원리,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능력은 관계를 보는 능력을 통해 고양된다는 원리, 이 두 가지 원리를 염두에 두고, 이제 아이디어가 실제로 생산되는 과정과 방법을 살펴보자.
1. 자료를 수집하라
첫 번째 단계는 원재료, 즉 자료를 수집하는 단계다. 이때 수집해야 할 자료는 두 종류다. 구체적인 자료가 하나, 일반적 자료가 둘이다. 광고를 예로 들면 구체적 자료란 해당 제품 및 그 제품을 구매할 사람과 관련된 자료다. 자료는 제품이나 제품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진짜 지식이어야 한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위대한 문학가 모파상에게 선배가 추천한 글쓰기 방법을 참고하는 게 좋을 것이다.
"파리의 거리로 나가. 그리고 택시 운전사를 한 명 골라. 아마 다른 택시 운전사들과 똑같이 보이겠지. 하지만 잘 관찰해 보는 거야. 자네 글에서는 한 명의 개인으로 보일 수 있을 때까지 그 사람을 묘사해 보는 거야. 세상의 그 어느 택시 운전사와도 다르도록 말이야."
제품과 소비자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진부한 말의 진짜 의미는 바로 위와 같은 것이다. 충분히 깊이 혹은 멀리 들어가면 언제나 모든 제품과 일부 소비자 사이에는 개별적인 관계가 있고, 바로 그 관계가 다시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구체적 자료 수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일반적 자료를 수집하는 부단한 과정이다. 일반적 자료 수집이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한 원리가 바로 여기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여러 요소의 새로운 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했던 것 말이다. 광고에서 아이디어란 제품과 사람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삶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새롭게 조합한 결과다. 훌륭한 크리에이터는 세상 그 어떤 주제에도 금세 흥미를 느끼고, 온갖 분야의 정보를 광범위하게 찾아본다.
2. 정신적으로 소화하라
자료를 수집했다면 그다음 해야 할 일은 소화를 위해 음식을 씹듯이 자료들을 꼭꼭 씹는 일이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구체적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의 이곳저곳을 마음의 촉수로 하나하나 더듬어보아야 한다. 팩트 하나를 골라서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고, 의미를 새롭게 느껴보아야 한다. 팩트 두 개를 모아서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맞아 들어가는지 보아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두 가지 일이 벌어진다. 첫 번째, 잠정적인 혹은 부분적인 아이디어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들을 잘 적어 둬야 한다. 이것들을 말로 표현해 두면 우리가 밟고 있는 아이디어 생산과정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두 번째로 일어나는 일은 얼마 못 가서 퍼즐 조각 맞추기에 지쳐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단계에서는 제2의 호흡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정신력까지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떠오르는 부분적 생각들을 카드에 계속 적어야 한다.
그러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은 무언가를 바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머릿속에서 모든 게 뒤죽박죽 섞여서 도저히 뚜렷한 통찰을 찾을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다. 이 지점에 도달하면, 퍼즐을 맞춰보려는 노력을 정말로 열심히 했다면 아이디어 생산이라는 전체 과정의 두 번째 단계는 완료한 것이니 세 번째로 넘어가면 된다.
3. 휴식을 주어라
세 번째 단계에서는 직접적인 노력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모든 주제를 내려놓고 고민하고 있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최대한 몰아내야 한다. 이 역시 앞선 두 단계만큼이나 반드시 필요한 단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민하는 문제를 무의식으로 보내서 잠자는 동안 해결되게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 생산과정의 이 세 번째 단계가 되면 고민 중인 문제를 완전히 내려놓고 자신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것으로 눈을 돌여야 한다. 음악을 듣고, 영화나 연극을 보고, 시나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수집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꼭꼭 잘 씹었다. 이제는 소화할 차례다. 가만히 둬야 한다. 위액이 잘 나오게끔 자극을 줘야 한다.
4. 느닷없이 눈앞에 아이디어가 나타난다
앞선 세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했다면 이 네 번째 단계는 확실히 찾아온다. 느닷없이 아이디어가 나타날 것이다. 아이디어는 결코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 떠오른다. 면도를 하거나 목욕을 하거나, 혹은 가장 흔하게는 아침에 반쯤 잠에서 깨었을 때 떠오른다. 더 이상 쥐어짜 내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조사도 멈추고 마음을 편히 먹은 채 쉬는 기간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5. 주변에 내놓아 우선 검증하라
아이디어 생산과정을 완수하려면 한 가지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이번 단계는 이제 막 탄생한 자그마한 아이디어를 현실이라는 세상에 내놓는 단계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디어를 주어진 여건에 정확히 맞추려면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막상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게 되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이 각색 과정을 잘 참아내지 못하거나 실용적인 태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매일매일 아이디어를 내놓으려면 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 단계에서는 아이디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 판단해 줄 사람들에게 비평을 받을 수 있게 아이디어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좋은 아이디어는 스스로 팽창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자극을 주어 의견을 추가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자신은 미처 보지 못했던 가능성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이디어 생산의 또 다른 법칙
지금까지 보았듯, 기발한 아이디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본 후에 기존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조합하고 연결해서 문제에 맞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을 은유(metaphor)라고 했다. '그대의 눈은 샛별이다'처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눈과 샛별을 연결하는 능력 말이다. 'A는 B다'에서 훌륭한 은유일수록 A와 B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혁신은 엉뚱한 두 개념을 이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뇌과학 측면에서 봐도 이는 타당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던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전두엽과 후두엽이,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아이디어 생산이란 이런 것이다.
제임스 웹 영은 파레토의 책 "생각과 사회"를 인용한다. 파레토는 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종유의 사람을 각각 '사색가'와 '불로소득자'라고 불렀다. 사색가는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에 늘 빠져 있는 유형의 사람이다. 반면에 불로소득자는 판에 박히고, 늘 똑같고, 상상력이 부족하며, 지키는 데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색가에게 조종당할 운명이다.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사람은 사색가다. 사색가는 우리 자신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앞에서 제시한 방법론을 실천하여 사색가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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