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유통의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배추 값이 폭락하여 밭에서 공짜로 뽑아가라고 하는 상황에서도 유통매장에서의 배추 값은 여전히 싸지 않다는 식의 얘기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소비자들은 대개 유통업자들을 비난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비난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상품이 중간 단계를 거치면서 가격이 비싸진다는게 비난의 논지인데, 이를 비난하기에 앞서 만약 중간단계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유통은 생산과 소비를 연결한다
어떤 가정집에서 저녁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메뉴는 닭볶음탕이라고 하면, 필요한 재료는 닭, 감자, 양파, 대파, 당근, 고추, 고추장, 맛술, 간장, 설탕 정도라고 해보자. 이때 유통기능이 없다면 재료들을 어떻게 조달해야 할까 난감해진다. 닭을 구하기 위해 계육가공장에 가야 할 것이고, 각종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해당 농장에 방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추장 등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공장에 찾아가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현실에서는 웬만한 마트에 가면 한 번에 다 구입할 수 있다.
유통에는 비용이 든다
처음에 이야기한 배추로 돌아가 보자. 배추 값이 폭락하여 수확을 포기할 정도라면 밭에서의 배추 값은 0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배추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배추가 필요한 가정집이 도심에 있을 경우 배추를 가지러 가려면 우선 교통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그뿐인가. 배추 하나를 구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또 어떡할 것인가. 사실 배추 같이 단위당 단가가 낮은 상품의 경우에는 유통비용이 더 들게 마련이다. 일단 밭으로부터의 운송비용, 차에서 내리는 하역비용, 경우에 따라서는 보관비용도 들 것이다. 그리고 포장비용이 들 수도 있다. 비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종 유통매장에 보기 좋게 진열도 해야 한다. 유통매장을 조성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비용도 모든 상품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배추 값을 지불하는데도 비용이 든다. 계산원 급여도 필요할 것이고 신용카드 결제라면 금융비용도 추가된다. 따라서 밭에 있는 배추와 유통매장에 있는 배추는 그 가치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논리다.
유통은 생산과 소비 간 '형태의 불일치'를 해소시킨다
유통기능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에는 좀 더 근원적인 것도 있다. 배추야 밭에서 뽑아온다고 하지만 만약 돼지고기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농장주인은 소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마리 단위로 출하를 하는 사람이다. 소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유통기능이 개입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형태의 불일치'라고 한다. 고객들은 다양한 상품을 소량으로 원하지만 생산자는 소수의 품종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유통이 필요한 근원적인 이유다.
유통은 기본적으로 시간적, 장소적 효용을 제공한다
유통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유통이 필요한 기본적인 이유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처한 시간과 장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개 생산 공간과 소비 공간은 분리되어 있다. 유통기능이 없다면 소비공간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품은 무척 제한적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통은 장소적 효용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간적 차이를 극복하여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상품을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 유통은 생산시기와 소비시기를 조절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유통은 기본적으로 보관기능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유통은 다양한 상품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유통매장에는 다양한 상품의 비교가 용이하게 진열되어 있고 판매사원들이 상품 정보도 제공한다. 매장에서 구매 대가로 신용카드 결제 기능, 경우에 따라서는 할부도 제공하기 때문에 금융기능도 제공한다고 봐야 한다. 일부 상품의 경우에는 보관, 운송에 따른 위험 부담 기능도 있다. 보관 중 발생하는 손실이나 부패, 그리고 상품 하자에 따른 교환 및 환불은 유통업자가 부담하는 중요한 위험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유통이 가격을 낮추는 기능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통업체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유통업자는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조달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량구매에 따른 바잉파워를 이용하여 가격을 낮추기도 한다. 이러한 낮은 조달가격은 판매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유통은 인류 역사발전의 산물이다
정리하면, 유통은 생산된 상품이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유통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생산자는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소비자는 원하는 상품을 쉽게 구할 수 없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오프라인 매장을 전제로 설명했지만 온라인 매장도 마찬가지다. 공간 개념이 다를 뿐이다.
인류역사를 봤을 때, 자급자족을 벗어나 교환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시장이 바로 유통의 원형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유통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장소적 효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정 장소에 가면 원하는 상품을 구할 수 있다는 효용은 유통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닭볶음탕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한 장소에만 가면 되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은 유통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이론적으로 살펴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유통에 대한 흔한 오해를 조금은 풀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중간단계에서 폭리를 취해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유통은 폭리를 취할 수 없는 구조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유통되는 상품의 가격이 비정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유통에 누명을 씌워서는 곤란하다. 경제현상을 파악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격 형성을 본질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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