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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의 계약 -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 간극 메우기

by 불꽃유랑단 2023. 4. 12.

계획을 세우는 나와 실행을 하는 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하곤 한다. 계획 세우기는 생각과 이성이 기반이 되는 반면 실제 행위는 당초 생각과 이성과는 큰 상관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행위는 오히려 감정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려는 아이디어로 등장한 개념 중 하나가 '율리시스의 계약'이다. 

 

 

율리시스의 계약이란 무엇인가

 

율리시스의 계약은 목표달성을 위해 현재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제약하는 조건을 미리 만드는 것을 뜻한다.
신경과학자인 데이비드 이글먼(Daveid Eagleman)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가 바로 율리시스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10년 동안 바다를 헤맨 끝에 고향에 돌아갔다. 오랜 방황 중에 여러 가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한 번은 사이렌(스타벅스 로고의 바로 그 사이렌이다)이라는 괴물이 사는 바다 가운데를 지나가게 되었다. 이 사이렌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그 목소리에 홀려 선원들이 정신을 놓아 배가 바위에 부딪혀 침몰하고 마는 것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는 듣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정신이 홀려 엉뚱한 지시를 내릴지도 몰랐기 때문에 선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자신을 돛대에 묶고 자신을 제외한 선원들은 밀랍으로 귀를 막도록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떠한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자신을 풀어주지 말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사이렌의 노랫소리는 듣고도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었다. 현재의 오디세우스가 미래의 오디세우스를 통제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착안해 데이비드 이글먼이 율리시스의 계약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호메로스-오디세이의-사이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사이렌

 

율리시스의 계약이 개념적으로 필요한 이유

 

율리시스의 계약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된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개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계획을 세울 때는 보통 이성적이고 더군다나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서는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게 마련이다. 실행은 다분히 기분과 감정에 좌우된다. 만약 업무상 계획이라면 외적인 강제에 의해 어떻게든 실현되겠지만 개인적인 계획의 경우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 자주 벌어진다. 외적 강제 없이 스스로의 통제력에 의해서만 실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리시스의 계약 같은 장치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

 

율리시스이 계약이 많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우선 모임을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터디그룹, 독서모임, 세미나모임 같은 것들이다. 모임에 속하게 되면 자신의 계획이 외부에 공표되고 자연스럽게 강제력이 형성된다. 미래 특정시간에 발표가 계획되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단순히 자신과의 약속과는 차원이 다른 실행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건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미국 듀크대학의 실험을 참고해 보자.

 

A반 학생들에게는 과제 세 개를 학기가 끝나기 전에만 제출하도록 하였고 B반 학생들에게는 세 가지 과제 각각의 마감시한을 스스로 정하여 교수에게 미리 고지하도록 했다.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B반 학생들 과제의 질이 월등했다. A반 학생들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겠지만 본인만 알고 있었다는 차이가 있다. B반 학생들은 자기 계획을 교수와 공유했기 때문에 기한 내에 과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계획이 공개적인 약속이 된 것이다.  

 

율리시스 계약의 진짜 의미

 

 율리시스의 계약은 미래의 실행력을 담보하는데만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불합리한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강제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결정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미래에 하게 될 결정을 미리 당겨 강제하는 것 중에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이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약물중독자가 스스로 치료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극적인 사례일 것이다. 

 

율리시스의 계약은 사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한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의지력이라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지를 발휘할수록 점점 수렁에 빠져들 수도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의지력에 최대한 덜 의존하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는 것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고 적용해 보자. 목표를 세울 때 미리 장치들을 마련해 보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살자. 의지만 믿고 너무 애쓰면서 살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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