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과 합리성에 근거해 있다. 이 전제 중 인간의 이기심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제학은 줄곧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하고 이론을 전개해 왔다. 경제학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모두가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더 많은 이익을 내려고 노력하면 경쟁이 되고, 그 경쟁이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류경제학의 전제에는 늘 의문이 따라다닌다. 정말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인가?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주류경제학 가정에 제대로 의문을 제기한 것은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최후통첩 게임'일 것이다. 최후통첩 게임은 인간의 이기심과 협력 본성에 대한 오랜 질문에 대한 실험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이 게임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단순히 이기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후통첩 게임: 게임 설계와 실험 결과
최후통첩 게임 설계
최후통첩 게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은 A와 B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다고 가정한다. 게임 진행자는 A에게 1만 원을 공짜로 지급하면서 1만 원을 B와 나누어 가지라고 제안한다. 어떻게 나누건 그건 A 마음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는 B가 자신의 몫으로 나누어진 금액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B가 동의하지 않으면 게임 진행자가 1만 원을 회수하게 된다.
그러면 이 게임에서 A는 주어진 1만 원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겠지만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정해져 있다. A가 9,999원을 갖고 B에게 1원을 주는 것이다. 의아할 수 있지만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이기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B는 1원 받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으면 1원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1원을 갖는 것이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보다 이익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에서 이런 의사결정이 일어날 수 있는가이다.
실험결과
실제 실험결과는 어땠을까? 결론은 이렇다. A는 B에게 평균적으로 4천 원을 나눠줬다. 그리고 B는 평균적으로 2천 원 이하일 때 제안을 거절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볼 때 수긍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기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왜 그런 비이성적인 선택을 했을까?
실험결과 해석
먼저, 사람들은 공정성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보다는 공정한 분배를 제안하고 불공정한 제안은 거절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의와 공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규범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사회적 규범의 기대는 개인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여 공정한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회적 규범은 인간의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공정하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이느니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문화적 영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화에 따라 게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후통첩 게임은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단순히 이기적인 존재만은 아니며,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공정성, 형평성 등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에서 제안을 거절하는 행위는 비록 자신에게 손해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불공정한 제안에 대한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협력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즉, 인간은 이기적인 동기뿐만 아니라 협력적인 동기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후통첩 게임은 단순한 경제 실험을 넘어, 인간의 심리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이 게임의 결과를 통해 우리는 공정성, 협력, 신뢰와 같은 가치가 사회 시스템 운영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사회시스템 개선 방안까지 이야기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 사회에 공정성을 강화를 위한 대책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제도적 공정성, 절차적 공정성, 분배적 공정성 모두 중요하다. 최후통첩 게임도 이러한 공정성 개념을 모두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게임에서 '돈 나눠갖기'가 실패하는 경우, 그 원인은 B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텐데, 우선 분배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제도적 공정성), A가 독단적으로 분배 금액을 결정하는 것이 절차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며(절차적 공정성) 분배 금액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분배적 공정성) 때문일 것이다.
최후통첩 게임에 AI가 참여한다면
마지막으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최후통첩 게임에 AI가 참여한다면 어떻게 결정할까? 실제로 구글의 'Gemini'에 질문해 보았다. "100달러가 주어진 최후통첩 게임에서 당신은 상대에게 얼마를 제시할 것인가?" 답은 이랬다.
"만약 제가 게임 참가자라면, 아마도 50달러를 제시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한 이유도 설명했다.
"왜 50달러를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해 드릴게요.
- 공정성 : 50달러는 가장 공평한 분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동등한 기회를 가졌으므로, 똑같이 나누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됩니다.
- 상대방의 수락 : 50달러라는 제안은 상대방이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적은 금액을 제시하면 상대방이 불쾌하게 느껴 거절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둘 다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장기적인 관계 : 비록 이 게임이 일회성이지만, 만약 이 상황이 실제 삶의 관계에서 일어난다면, 공정한 분배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욱 원만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AI는 상식적이고, 사람들이 생각할 때 바람직한 답변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답변이 왠지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 인간은 이보다는 훨씬 이기적이다. 어쨌든 최후통첩 게임은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예다. 인간과 관계있는 사건들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의사결정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적어도 경영학에서는 가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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