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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 효과 : 소비와 기술 경쟁에서의 맹목적 불가역성

by 불꽃유랑단 202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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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 효과’라는 것이 있다. 톱니 하면 우리가 먼저 떠올리는 것은 딱 들어맞는 무언가, 혹은 나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없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톱니 효과의 공식적인 쓰임은 일단 어떤 상태에 도달하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특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가역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쓰인다. 이러한 특성은 현대사회의 여러 특성들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소비측면과 기능 경쟁 측면을 보자.

 


 

톱니는 기계 부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두 개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톱니는 힘을 전달하고, 회전 속도를 변화시키며, 방향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사실 톱니 자체는 불가역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톱니가 불가역성의 상징이 된 것은 아마 태엽장치의 톱니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태엽을 돌리면 쇠줄이 점점 강하게 소용돌이처럼 조여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소용돌이 모양의 쇠줄이 서서히 풀리면서 톱니를 돌리게 된다. 따라서 태엽은 한쪽 방향으로만 돌릴 수 있고 톱니도 한쪽으로만 돌아간다

 

경제학에서의 톱니 효과

경제학에서 '톱니 효과(Ratchet Effect)'특정 수준에 도달한 소비 수준이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현상을 의미한다. 마치 한 번 돌아간 톱니바퀴가 쉽게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소비 수준 또한 한번 높아지면 낮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비에 있어서 톱니 효과의 원인과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소비습관의 형성 :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소비 습관형성되고, 이는 소비를 지속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예를 들어, 고급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사람은 더 저렴한 모델로 바꾸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자동차도 그렇다고 한다.
  • 사회적 비교 : 주변 사람들의 소비 수준과 비교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소비를 늘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 소득 증가에 대한 기대 : 미래에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재의 소비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공급 체계가 우세하기 때문에 급여생활자의 경우 특히 소득이 상향하는 경향을 보인다.
  • 제도적 요인 : 신용카드 사용의 확대, 할부 구매의 증가 등 제도적인 변화는 소비를 부추기고, 소비 습관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많은 실증연구에서 현금 사용이 소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톱니 효과의 경제적 의미도 다시 정리해 보자.

  • 소비촉진 : 톱니 효과는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소비는 가계 부채 증가와 같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 경기변동에 대한 완충작용 : 경기 침체기톱니 효과로 인해 소비가 급격히 감소하지 않기 때문에 불황의 완충작용을 할 여지가 있다. 반대로 경기 호황기에는 지속적인 소비증가 효과로 인해 소비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 정책효과의 제한 : 정부가 소비를 억제하려는 정책을 펼쳐도 톱니 효과 때문에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톱니효과
불가역적인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톱니 효과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달리 지속적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소비를 줄이지 않는 톱니 효과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소비만 늘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소비를 줄이는 현상은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소비를 줄이지 않고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기술경쟁에서의 톱니 효과

그래서 요즘은 톱니 효과가 소비의 지속적 증가현상을 가리키기보다는 기업들의 기술경쟁을 비유하기 위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기업들이 새로운 사양이나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하면 경쟁적으로 이를 따라가고 거기에 신사양과 신기능을 추가하는 경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정리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시작은 한 기업의 도전 : 특정 기업이 새로운 기술이나 기능을 탑재한 제품을 출시하면,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 경쟁기업들의 추격 :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경쟁 기업들은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비슷하거나 더 나은 기능을 탑재한 제품을 출시하려고 한다.
  • 끊임없는 업그레이드 : 한 기업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면 다른 기업들도 이를 따라 하면서 제품의 사양은 점점 높아지고, 기능은 더욱 다양해진다.
  • 소비자 이익 증대 : 톱니효과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더욱 다양하고 성능이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이제 살펴보겠지만, 과도한 기능은 소비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마치 톱니바퀴가 한 번 맞물리면 계속해서 돌아가듯, 기업들은 새로운 기능을 탑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이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기능을 제공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별 쓸모가 없는 과한 기능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톱니 효과는 주로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다. 

 

그러면, 톱니효과의 몇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 스마트폰 : 한 회사가 새로운 카메라 기능을 선보이면 다른 회사들은 더 높은 해상도, 더 많은 기능을 탑재한 카메라를 선보인다. 이러한 경쟁은 보통 소비자가 기능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갈 것이다. 카메라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기능의 몇 퍼센트나 쓰고 있을까.
  • 자동차 : 신차는 늘 새로운 사양을 경쟁적으로 달고 나온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자동주차 기능,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신기능이 많아질수록 처음에 신기하긴 해도 잘 쓰지 않는 기능들도 누적되고 있다. 
  • 가전제품 : 스마트 TV, 냉장고, 세탁기 등 대표 가전제품만 보아도 새로운 기능 경쟁이 대단하다. TV의 경우만 봐도 탑재된 기능이 너무 많아 그 기능들을 다 활용하지 못할뿐더러 복잡성만 가중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기능 활용을 위해 별도의 학습이 필요한 지경이다.

톱니 효과의 명과 암

위에서 본 것처럼 생산자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동종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시장경쟁의 압력으로 인해 새로운 기능이 점차 늘어간다. 기업들마다 기존 기능을 모두 반영한 채 신기능을 계속 추가하다 보니 기능이 누적적으로 증가만 할 뿐이다. 경쟁기업의 신제품이 갖춘 기능을 각 기업이 자신의 신제품에 구현해야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으로 쌓여간 기능들이 정말 고객들을 위한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각종 신제품에 탑재된 수많은 기능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업들의 점진적인 기능 추가 경쟁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신기능의 탑재가 가격 상승까지 불러온다면 언제가 단순함을 무기로 삼는 기업에게 크게 당할 수도 있다. 이른바 '파괴적 혁신'에 희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톱니효과의 예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소비규모기업들의 점진적인 기능 추가 경쟁을 설명했다. 두 가지 모두 불가역적인 성격이 있음을 이야기했고 결국은 이러한 지속 증가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없음도 보았다. 우리 인생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적절한 미니멀리즘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끔은 멈춰 서서 과한 것은 덜어내야 할 것이다. 톱니라는 장치는 본래 불가역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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