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분야, 여러 상황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자주, 중요한 의미로 쓰이는 용어일수록 그 유래와 정확한 뜻을 알 필요가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은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쓰임인 경제적 양극화고, 또 다른 하나는 저축의 역설에 관한 내용이다. 두 가지 의미를 살펴보자.
'풍요 속의 빈곤', 일반적인 쓰임
우리에게 익숙한 '풍요 속의 빈곤' 개념은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지칭하는 수사적 표현으로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파생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비유적으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 용어는 1963년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케네디는 편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에서 전체 국민 중 6분의 1이 절대 빈곤에 머물고 있다면서 이러한 '풍요 속의 빈곤은 우리가 절대 넘길 수 없는 역설'이라고 언급했다. 이 편지를 받은 부통령 존슨은 바로 케네이 이후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 편지의 영향인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대통령 존슨은 실제 경제기회법에 서명했고, 이 법은 이후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풍요 속의 빈곤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 소득 불평등 심화 :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난다.
- 자원의 불균형한 분배 : 소득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주거 등 다양한 자원이 불균형하게 분배되면서 특정 계층의 빈곤이 심화될 수 있다.
- 경제시스템의 문제점 : 신자유주의 등 시장 경제 중심의 경제 시스템은 경쟁을 심화시키고,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 사회 안전망 부족 : 실업, 질병, 노령 등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부족하면 빈곤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 차별과 소외 : 성별, 인종, 국적, 장애 등 다양한 차별과 소외는 특정 집단의 빈곤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풍요 속의 빈곤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 사회불안 증가 : 빈부 격차 심화는 사회 불안과 갈등을 야기하고, 사회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사회불안 증가는 대개 범죄율 상승으로도 연결된다.
- 경제성장 둔화 : 빈곤층의 소비 능력 감소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근래 들어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된 주요 원인으로 부의 양극화를 들고 있기도 하다.
- 다양한 사회문제 발생 : 빈곤은 범죄, 질병,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빈곤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회적 현상이 경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풍요 속의 빈곤', 즉 경제적 양극화는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어떤 것이 가능할지 생각해 보자.
- 소득 불평등 해소 : 조세제도 정비, 최저임금 인상, 사회보험 확대 등을 통해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기본 바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사회안전망 강화 : 실업, 질병, 노령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이는 경제성장을 위한 대책이라기보다는 사회불안을 완화하기 노력으로 볼 수 있다.
- 교육기회 학대 :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사회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
- 차별 해소 : 성별, 인종, 국적, 장애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적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결국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 지속가능한 성장 추구 : 단순히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적 형평성과 환경 보호를 고려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이는 너무 장기적 시각일 수도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 일부가 기본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을 경제적인 문제라고만 보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의 '풍요 속의 빈곤'
풍요 속의 빈곤은 원래 경제학 용어다. 부유한 사회가 소비보다 저축을 더 하려는 경향으로 인해 도리어 빈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축의 역설'이라고도 한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일찍이 저축의 역기능에 주목했다. 케인즈가 볼 때 저축은 소비지출 감소를 불러와 총수요를 위축시키고 궁극적으로 국민소득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득이 낮아진 개인들은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저축을 줄일 수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소비지향적인 사회에서는 총수요를 확대시켜 국민소득이 증가해 결과적으로 저축이 늘어날 수도 있다.
이처럼 풍요로운 사회가 높은 저축성향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빈곤해진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풍요 속의 빈곤'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다른 경제학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저축의 순기능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저축이란 현금을 어딘가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고 시장에 유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로써의 성격도 갖고 있다.
저축이라는 것이 경제에 순기능을 갖는지 역기능을 갖는지는 저축이 투자의 형식으로 국민경제 내로 유입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여기에 대한 견해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갈린다. 케인즈주의에 대응해 형성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저축이 자연스럽게 투자로 전환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자율이 매개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케인즈는 극심한 경제침체 하에서 사람들이 경제상황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기 때문에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용어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해서 봤다. 이 중 경제학적 쓰임은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용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의미를 제대로 알아두어야 한다. 만약 경제지에 '풍요 속의 빈곤'이 등장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제지에서는 저축의 역설을 설명하려고 그 용어를 썼는데, 독자가 일반적으로 쓰는 의미만 알고 있다면 커다란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러한 오해가 개인 독자 차원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벌어진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과장된 상상이기는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문제다. 지식은 용어와 개념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꼭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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