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행동패턴이 합리적이라면 예측하기 쉽고 그것을 이론에 활용하기도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그리고 많은 연구 결과 인간은 결코 합리적으로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을 열심히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행동경제학자들이다. 오늘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어느 행동경제학자의 연구 결과를 몇 가지 보려고 한다. 재미도 있고 중요한 통찰도 있다. 살펴보자.
인간의 행동은 많은 경우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규칙성은 있다. 따라서, 그 비합리적 행동이 예측가능한 범주 내로 들어온다. 이러한 비합리적 행동 패턴을 규명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은 비즈니스 전략을 도출하는 데 있어 뛰어난 성찰을 제시해 준다. 오늘은 행동경제학이 규명해 낸 몇 가지 재미있는 인간의 행동 패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댄 애리얼리(Dan Arlely)'의 책 "Predictably Irrational: The Hidden Forces that Shape our Decisions(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다룬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네 가지 사례다.
남과 비교하는 인간, 만족은 상대적인 것
인간의 만족은 절대적인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족하는지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얻어진다. 비교대상 없이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만족을 느끼다가도 남과 비교하여 자신이 가진 것, 혹은 처지가 더 낮다고 느끼면 바로 불만족을 느끼게 된다. 만족은 상대적인 것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소득 불평등이 낮은 경우가 많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중 눈에 띄는 곳이 부탄인데, 그 나라의 국민들이 더 행복한 것은 일단 소득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댄 애리얼리는 상대적 만족과 관련하여 미국의 임원 임금 변천사에 대해서 소개한다. 미국은 임금근로자의 평균 급여 대비 임원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다. 미국 정부는 기업체 임원의 천문학적인 급여 상승을 억제할 목적으로 임원 연봉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임원들의 엄청나게 높은 급여 수준이 공개되면 여론에 압도되어 자연스럽게 급여상승이 억제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경영자들은 서로의 연봉을 비교하게 되었고, 이들의 연봉은 공개 이전보다 더 급격하게 높아졌다. 비교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간의 만족은 비교 대상에 의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수요와 공급 법칙을 초월하는 앵커링 효과
시장에서 제품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전통적인 경제학의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한 법칙이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가격효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엥커링'이다. 새끼거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거위는 처음 본 사물 가운데 움직이는 것에 애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자신의 어미가 그 대상이지만 처음 본 움직이는 사물이 사람이라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게 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각인(imprinting)'이라고 하고, 거위에게 통용되는 이 원리가 인간에게도 통용된다고 행동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앵커(anchor)'라고 하는 것이다.
댄 애리얼리가 소개하는 일화가 있다. 타히티에서 나오는 흑진주가 처음에는 수요가 없어 판매가 미진할뿐더러 어떻게 가격을 책정할지도 애매했다. 타개책으로 흑진주 판매업자는 지인이 운영하는 보석상점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흑진주를 진열하고 고급 잡지에도 광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흑진주는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예계 스타들의 목에 걸리게 되었다. 처음에 제시된 높은 가격이 앵커가 되어 수요에 관계없이 흑진주의 가치를 높였고 이어 수요창출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앵커'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도 있다. 미국에는 9자리로 이루어진 사회보장번호가 있다. 애리얼리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사회보장번호 마지막 두 자리 숫자를 적게 했다. 그러고 나서 가지고 온 와인을 살 생각이 있는지 물으면서 얼마에 살 것인지 써 내게 했다. 결과는 사회보장번호 마지막 자리가 80~99인 학생이 00~19인 학생보다 3배가량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바로 전에 써낸 숫자에 앵커링 된 것이다. 최초의 앵커는 이후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한 실험이었다.
소유에 대한 애착이 물건의 가치를 높인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경향이 있다. 애리얼리는 NBA 티켓을 가지고 실험을 진행했다. 티켓에 당첨된 학생들로 하여금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 판매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티켓을 파는 입장의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티켓을 팔 것인지 써내게 했고, 티켓을 사는 학생들에게는 얼마에 살 것인지를 역시 써내게 했다. 티켓에 당첨되어 팔아야 하는 학생들은 평균 2,400달러에 팔겠다고 대답했다. 반면에 티켓을 사려는 학생들은 평균 170달러를 낼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두 집단 간에는 티켓 가치에 대해 14배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그걸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이것을 '보유효과(Ownership Effect)'라고 한다. 마케팅 수단으로 흔히 활용되는 1개월 무료이용권, 사용 후 반품 제도 등은 모두 보유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격이 사용효과마저 높이는 플라시보 효과
애리얼리는 가격에 따라 효과도 다르게 느낄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가 가격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은 이랬다. 100명에게 비타민제 C를 주고 '신약 진통제'라고 소개하면서 한쪽에는 한 알에 2달러 50 센트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는 한 알에 10 센트라고 했다. 실험 결과, 한 알에 2달러 50 센트라고 알고 있는 집단에서는 거의 모두 '효과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반면, 한 알에 10 센트라고 알고 있는 집단에서는 '효과가 있다'라고 답한 숫자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어차피 가짜 약이었지만, 같은 플라시보 효과라도 비싼 쪽이 더 높게 나타났다.
가격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효과를 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같은 음식이라도 더 비싼 쪽이 주관적으로 더 맛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식당은 팔리지는 않더라도 일부러 아주 비싼 메뉴를 가격표 상단에 배치한다. 그러면 설사 그 메뉴를 주문하지 않더라도 고객들은 그 식당을 더 가치 있게 느낀다. 그리고 앵커링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그 비싼 가격의 메뉴 덕분에 다른 메뉴가 저렴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선택이 더 쉬워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행동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행동은 많은 경우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합리적 행동도 일종의 규칙성이 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예측 가능성으로 인해 제도 개선에 활용할 수 있고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아주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활용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실험들을 통해 밝혀낸 여러 이론들을 살펴보고 현실에 적용해 보는 작업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작은 것부터 실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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