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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도니즘의 역설(Paradox of Hedonism) : 행복추구의 본질과 소비행태

by 불꽃유랑단 2024.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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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은 아니지만, 행복이 빠진 삶을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과거 어떤 여행지의 소원을 적는 표찰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행복하고 싶어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과연 행복의 정체가 뭘까? 쾌락과 다른 것일까?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헤도니즘의 역설'에 관해 보려고 한다. 가볍게 살펴보자.

 


    

헤도니즘과 공리주의, 그리고 헤도니즘의 역설

헤도니즘은 보통 쾌락주의로 번역되며, 쾌락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철학사조다. 헤도니즘은 쾌락 자체가 목적이다. 쾌락과 행복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쾌락은 최고선이 된다. 헤도니즘과 대척점에 서있는 철학사조가 공리주의다. 공리주의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를 공리(utility), 즉 효용의 극대화에서 찾는다. 공리주의자들은 헤도니즘과 달리 행복과 쾌락은 다른 것이며, 행복이 인간 행위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고 본다. 공리주의는 행복에 대해 헤도니즘과 무척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헨리 시지윅'은 "윤리학 방법론"에서 '인간이 무언가를 행함으로써 직접적으로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헤도니즘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기억되는 '존 스튜어트 밀'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행복이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얻어지는 부산물'이라고 보았다.    

 

헤도니즘의 역설이란 흥미로운 모순을 담고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자 행복의 길이라고 믿지만, 정작 쾌락을 얻기 위해 노력할수록 행복은 더욱 멀어진다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마치 샴페인 거품처럼 찰나의 쾌락은 곧 사라지고, 더 큰 쾌락을 갈망하게 만든다. 새로운 자극에 쉽게 익숙해지고, 더 강렬한 경험을 찾아 헤매는 것은 현대 사회의 만연한 현상이다. 소셜미디어에서 타인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인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헤도니즘의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쾌락추구로부터의 탈피, 그리고 진정한 행복 찾기

그러면 왜 우리는 쾌락 추구에 갇히고 마는가? 몇 가지만 살펴보자.

  • 쾌락의 중독성 :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은 쾌락을 경험할 때 분비되어 강렬한 보상 체계를 활성화시킨다. 이는 마치 중독과 같아서, 더 큰 쾌락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게 만든다.
  • 행복에 대한 오해 : 많은 사람들은 쾌락을 행복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쾌락을 넘어 의미, 성장, 관계에서 비롯된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공허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소비주의 문화 : 현대 사회는 소비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물질적인 소유가 행복의 척도라는 잘못된 믿음은 끝없는 소비를 부추기고, 결국 행복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헤도니즘의 역설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뻔한 얘기 몇 마디만 해보자.

  • 경험보다는 관계에 집중 : 물질적인 소유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가족, 친구, 동료와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따뜻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관계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 자기 성장을 위한 노력 : 새로운 것을 배우고,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노력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자존감은 건강을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바탕이다. 
  • 소비를 줄이고 경험을 늘릴 것 : 물질적인 소유보다는 여행, 취미 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한때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물질적 소유는 사람의 정신을 구속하는 측면이 있다.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행위이며, 헤도니즘의 역설과도 일맥상통한다.

헤도니즘의 역설은 우리에게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의 허무함을 일깨워준다. 진정한 행복은 쾌락을 넘어 의미, 성장,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한다. 끊임없는 쾌락 추구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헤도니즘의-역설과-현대자본주의의-소비행태
명품에 열광하는 소비행태는 일종의 현대적 헤도니즘으로 볼 수 있다

헤도니즘의 역설과 소비행태

이제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소비에 관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물건의 소유와 소비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어쨌든 소비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남들보다 먼저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 서는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 사람들에게 '그건 행복이 아니야'라고 무턱대고 말할 수 있을까?

 

제품의 구매를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의 문제는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똑같은 제품을 구매하면서 어떤 사람은 실용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또 어떤 사람은 심미적 가치에 중점을 둔다. 심미적 가치에 중점을 두는 사람들이 대개 제품 구매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정말로 구매 동기가 쾌락 추구인 사람들도 많다. 명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제품의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표면적으로는 실용성을 내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심리적 동기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심미적 가치 중심 소비자 중에는 브랜드 자체를 즐기는 극단적 성향의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을 헤도니스트라고 칭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소비가 미덕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이른바 '소비를 권하는 사회'다. 따라서 심미적 소비자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취향과 행복관을 인정해줘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미 실용적 가치를 떠난 제품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말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예술작품 중에 실용적 가치가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그 많은 미술품들과 음악들이 과연 실용성 때문에 소비되는 것일까? 일종의 지적 허영심이 동기가 되는 측면을 부정할 수 있을까? 심미적 소비도 그런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은 균형의 문제다. 앞에서 열거한 쾌락추구의 함정 극복과 진정한 행복 찾기도 의미 있는 것이지만, 소비에서 행복을 찾는 행위를 어떻게 비판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행복을 찾는답시고 내심 행복하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외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큼은 그만두자. 자신의 진짜 마음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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